재생 에너지

강원 태백시, 폐광 지역의 재생 에너지 전환 실험

dodololve 2025. 7. 6. 18:50

강원도 태백시는 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심장이었던 도시였다. 20세기 중반, 태백은 수많은 광부들이 모여 살며 국가 산업화를 이끈 에너지 거점지였다. 그러나 석탄 합리화 정책 이후 광산이 줄줄이 폐광되며 도시 경제는 침체되고, 인구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남은 것은 텅 빈 갱도와 고령화된 인구, 그리고 사라져버린 일자리였다. 하지만 최근 태백시는 이 과거의 유산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로 ‘재생에너지 중심 도시’로의 전환이다. 버려진 폐광 공간과 고지대를 활용한 태양광, 풍력, 지열 에너지의 실증 프로젝트가 태백시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폐광 지역의 재생 에너지 전환

이 시도는 단순한 전력 생산을 넘어, 지역의 생존전략이며 도시 재생의 핵심이다. 이 글에서는 태백시의 재생에너지 전환 배경과 정책, 실증 인프라 현황, 주민 참여 사례, 그리고 향후 확산 가능성과 한계까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폐광지역의 대전환 – 재생에너지 도시 정책의 배경과 방향

태백시는 오랜 기간 폐광에 따른 인구 감소와 산업 붕괴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청년층 유출, 고령화 심화, 지방소멸 위기까지 겹치면서 도시 전체의 존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지방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부터 폐광지역 에너지 전환 시범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태백시는 그 중심 도시로 선정되었다. 기존 탄광 산업은 중단되었지만, 태백은 여전히 높은 고도, 넓은 폐석지, 안정적인 풍속 등 재생에너지 인프라 조건이 매우 우수한 지역이다. 태백시는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그린 에너지 산업도시 태백’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태양광·풍력·지열 중심의 다중 재생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본격화했다. 동시에 폐광부지를 활용한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중소 에너지 기업 유치를 병행하면서 산업구조 자체를 친환경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비 및 지방비 수백억 원이 투입되었고, 현재까지 10여 개 이상의 실증 사업이 태백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태백형 재생에너지 실증 인프라 구축 현황

현재 태백시는 황지동, 고한읍, 철암동 등 폐광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재생에너지 실증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대표 사례인 ‘황지태양광 발전단지’는 폐석장 부지 약 20만㎡에 설치된 15MW급 설비로, 연간 약 1,800만k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인근 5천 가구 이상에 전력 공급이 가능한 규모이며, 현재 일부 전력은 한전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고지대 지역의 특성을 살린 ‘고한풍력단지’는 10기 이상의 풍력 터빈이 설치되어 있으며, 태백 특유의 강풍 자원을 활용해 고효율 발전을 달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열에너지 실증 센터는 버려진 광산의 갱도 내부의 일정한 온도를 활용해 열을 저장하고, 이를 냉난방에 적용하는 시스템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시청과 일부 공공기관 건물에 시범 적용 중이다. 특히 이 시스템은 에너지 저장 기능까지 포함해 전기·열 이중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바이오에너지도 병행되고 있는데, 지역 목재 폐기물과 축분을 활용한 열병합 시스템이 일부 마을에 도입되어 난방용 연료로 전환되고 있다. 이처럼 태백은 단일 설비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특성에 맞춘 복합형 재생에너지 구조를 구축하고 있으며, 그 활용 범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주민 참여 기반의 순환형 지역 재생에너지 모델

태백시는 기술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넘어서, 주민 주도형 순환 모델을 함께 설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된다. 지역 주민들은 ‘에너지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해 태양광·풍력 발전소에 출자하고, 그 수익을 배당받고 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태백 내 에너지 협동조합은 5개 이상 설립되었으며, 이 중 일부는 수익 일부를 지역 장학금, 복지 사업에 기부하며 지역경제에 선순환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태백시는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지역 내 재생에너지 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하고, 태양광 패널 설치, ESS 관리, 풍력 유지보수 등의 직무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을 수료한 청년들은 지역 기업에 취업하거나 창업을 통해 신생 에너지 산업 생태계의 인적 자원으로 편입되고 있다. 주민 의견 수렴과 교육도 강화되었으며, 각 발전소에 정보 공개 시스템을 설치해 에너지 생산량, 수익 배분 내역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게 함으로써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태백은 기술과 주민, 경제와 환경이 함께 작동하는 복합형 재생에너지 순환 구조를 실현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폐광지역의 벤치마크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폐광지의 한계를 넘어선 재생에너지 도시의 미래 가능성

태백시의 실험은 단순한 지역 사업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직면한 에너지 전환 과제에 대한 현실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산업 기반이 사라진 지방 중소도시들에게 **‘폐자원을 새로운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은 매우 실용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태백시는 향후 에너지 자립률 5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탄소중립 산업특구 지정과 연계된 제2차 전환사업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과제도 있다. 고지대의 혹독한 기후, 설비 유지 비용, 민간 투자 부족, 송전망 연계 지연 등이 지속적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전력 시장에서 소규모 재생에너지가 가지는 수익성 불안정성도 민간 참여 확대의 걸림돌이 된다. 이에 태백시는 정부에 FIT제도(발전차액지원), 장기 PPA계약, 지방 전력판매 권한 부여 등의 정책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백의 도전은 ‘광산의 종말이 도시의 종말이 아님’을 증명하는 강력한 사례다. 이곳은 지금, 에너지 자립 도시, 순환 경제 도시, 지속 가능 도시로의 긴 여정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